
입구에서 시작되는 맥락
건물 유리문에는 테이프로 붙인 신문 형식의 종이 두 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는 ‘BREAKING IN SANGIL-DONG — A New Casual Wine Bar with Pasta is Here’라는 제목의 자체 제작 뉴스레터, 다른 하나는 ‘PERSONA’라는 이름의 호스트 소개 카드입니다. 두 명의 호스트가 자신을 8비트 픽셀 캐릭터로 표현하고, 와인을 좋아하고 면 요리를 즐긴다는 짤막한 자기소개를 적어놓았습니다. 거창한 간판 없이 이 종이들이 간판 역할을 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 벽에도 같은 PERSONA 카드와 뉴스레터가 테이프로 붙어 있습니다. 입구부터 테이블까지의 동선이 하나의 작은 전시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공간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공간 구성
메인 홀에는 길고 두꺼운 원목 테이블 하나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러 팀이 같은 테이블에 앉는 구조입니다. 테이블 위에는 LED 캔들이 여러 개 놓여 있어 저녁 시간에는 황동색 빛이 전체 공간을 덮습니다. 벽 한쪽에는 파스타 봉지, 통조림, 시리얼 상자 같은 식재료와 와인 병들이 선반에 함께 진열되어 있어 마치 누군가의 주방 한 켠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줍니다.

별도의 작은 룸도 있습니다. 원목 테이블에 붉은 의자 세 개가 놓인 4인용 공간으로, 벽에는 작은 청록색 타일 형식의 이미지들이 불규칙하게 붙어 있습니다. 복도 쪽 벽에는 천 소재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고, 낡은 철문 옆에 붙은 한자 부적 같은 종이가 오래된 건물의 결을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인상을 줍니다.



창가 쪽 자리에서는 바깥 나무와 건물이 함께 보입니다. 밤이 되면 노란 화병에 꽂힌 흰 데이지꽃이 창틀 위에서 조명을 받아 사진이 되는 구도입니다. 오픈 키친 너머로는 호스트가 직접 요리하는 모습이 보이고, 키친 앞 낮은 선반에는 이날 기준 15병 내외의 와인 병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메뉴와 음료
메뉴판은 린넨 소재 천에 손글씨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레드·화이트·오렌지 와인을 각각 한 페이지씩 구성하고, 글래스 가격은 대부분 10,000원 내외로 강동구 상권 치고는 접근 가능한 편입니다. ‘애기 & 어른’이라는 섹션에는 탄산음료와 유기농 에이드도 포함되어 있어 비음주 동행도 선택지가 있습니다.



이날 주문한 화이트 와인은 연한 황금빛을 띠는 스틸 와인으로, 산미가 뚜렷하면서 미네랄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초록색 유리 버킷에 체크무늬 수건을 걸쳐 서빙되는 방식도 공간 분위기와 어울렸습니다.

음식
버섯 파파르델레
넓적한 생면 파파르델레에 버섯과 크림 소스가 덮인 파스타입니다. 소스는 버터보다 육수 베이스에 가까운 묽기로, 파마산 치즈를 곱게 갈아 올리고 루콜라 줄기를 몇 가닥 얹었습니다. 면은 익힘 정도가 고르고 소스가 잘 배어 있었습니다. 버섯의 풍미가 크림에 녹아 있어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무겁지 않은 편입니다.

새우 카펠리니
접시에 담긴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탈각한 새우를 여러 마리 가지런히 얹고, 그 아래에 매우 가는 카펠리니 면이 타원 형태로 놓여 있습니다. 붉은 소스가 접시를 채우고 있어 색 대비가 뚜렷합니다. 면은 카펠리니 특유의 가느다란 질감으로, 소스를 많이 흡수해 약간 뭉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우는 익힘이 적절해 탄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호스트 소개에 ‘면을 사랑하고 라면은 2개 기준 물 한 컵 들고 7.5초 계량’이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 섬세함이 이 요리에서도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올리브 타프나드 & 크로스티니
식사 전 스타터로 나온 구성입니다. 올리브를 굵게 다져 만든 타프나드를 얇게 구운 바게트 조각 여러 개와 함께 금속 접시에 담아 냅니다. 올리브 특유의 염분과 허브향이 진하게 올라오고, 와인과 함께 먹기에 충분히 기능적인 조합입니다.


시저 샐러드
로메인을 기본으로 크루통, 반숙란, 파마산 치즈를 넉넉히 갈아 올린 정직한 구성입니다. 드레싱은 별도로 버무린 것이 아니라 위에서 뿌린 방식으로, 채소의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었습니다.

크렘브륄레
디저트로 나온 크렘브륄레는 흰 도자기 라므킨에 담겨 있고, 설탕 표면이 균일하게 캐러멜라이징되어 있었습니다. 중앙 쪽은 조금 더 진하게 태워진 상태였습니다. 커스터드는 차갑고 밀도가 있었으며, 표면을 스푼으로 깨는 질감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서비스와 분위기
호스트 두 명이 직접 요리하고 서빙합니다. 서비스는 격식 없이 편안하고, 공간 전체가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저녁’이라는 콘셉트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긴 공용 테이블 구조상 다른 손님과 가까이 앉게 되지만, 조명이 낮고 캔들 빛이 적당한 분리감을 만들어줍니다. 강동구 상일동이라는 위치를 감안하면 이 정도 공간 밀도와 메뉴 구성은 생각보다 공들인 편이라는 인상입니다. 어떤 경험을 원하느냐에 따라 이 공간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기본 정보
- 주소: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로 31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