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삼 사거리에 나타난 덕후선생
테헤란로 134,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들어서면 ‘덕후선생(德厚先生)’이라는 한자 네온사인이 붉은 빛으로 번지는 공간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로수길 원점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브랜드가 강남 한복판에 어떤 밀도로 다시 나타났는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공간의 완성도가 높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공간 구성 : 조도, 소품, 그리고 수증기
홀 전체는 낮은 조도로 유지되고, 천장에 일렬로 늘어선 반원형 조명이 공간의 리듬감을 만들어냅니다. 중앙 오픈 키친에서는 대나무 찜기가 쌓여 수증기를 뿜어내고, 그 너머로 붉은 네온사인 ‘덕후선생’이 흐릿하게 비칩니다. 이 두 요소의 조합이 공간을 꽤 몽환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바 쪽으로는 위스키와 바이주, 와인 등 다양한 주류 병이 진열되어 있고, 직원이 맥주를 따르는 장면도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옵니다. 복도 벽면에는 오리와 신사 모습을 결합한 일러스트가 원형 프레임 안에 걸려 있어 브랜딩의 방향성을 알 수 있습니다.



메뉴 구성 : 음식과 주류
음식 메뉴는 크라프트지에 인쇄된 한 장짜리 시트와, 붉은 표지의 주류 메뉴 북 두 가지로 나뉩니다. 주류 메뉴는 칵테일, 하이볼, 와인(스파클링·화이트·레드), 맥주, 한국 소주, 바이주(중국 백주), 각종 싱글몰트 위스키까지 범위가 넓습니다. 이 상권 치고는 주류 구성이 꽤 촘촘하다는 인상입니다.


북경오리 반마리 : 오픈 키친에서 잘려 나오는 오리
오픈 키친 안쪽에는 오리가 후크에 걸려 매달려 있고, 주문이 들어오면 셰프가 유리 너머에서 직접 손질합니다. 테이블에 도착한 북경오리 반마리는 얇게 썬 오리고기, 대나무 찜기에 담긴 얇은 밀전병, 오이·대파 채, 해선장과 소금으로 구성됩니다. 오리고기 겉면은 윤기가 돌고 마호가니 빛 색감이 선명합니다. 껍질 쪽은 얇고 바삭한 편이며, 살코기는 촉촉하되 파삭한 껍질과 층이 느껴집니다. 밀전병은 두께가 얇고 찰기가 있어 내용물을 감싸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소금과 해선장 두 가지로 맛의 방향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이 단조롭지 않게 해줍니다.





홍유초슈 (만두) : 붉은 소스와 얇은 피의 조합
홍유초슈는 넓고 얇은 만두피 위에 붉은 홍유 소스, 다진 마늘, 슬라이스 홍고추, 대파가 얹혀 나옵니다. 고수가 위에 쌓여 향을 더합니다. 만두피 식감은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속은 돼지고기로 채워져 있어 담백한 편입니다. 붉은 소스의 매운 기운은 강하지 않고 기름진 향이 먼저 올라옵니다. 젓가락으로 들어올리면 소스가 흘러내리는 만큼, 한 번에 입에 넣는 방식이 맞습니다.


귀신닭과 소흥주전복조개냉채
귀신닭은 납작하게 썬 닭고기, 목이버섯, 땅콩 등을 연잎 위에 담아 제공합니다. 고수와 청양고추가 섞여 향이 진하고, 양념이 재료 전체에 고루 배어 있습니다. 목이버섯의 쫄깃한 식감이 닭고기의 찢긴 결과 대비를 이룹니다. 소흥주전복조개냉채는 모시조개를 레몬그라스, 적양파, 고수와 함께 볶아 낸 요리로, 소흥주 특유의 발효 향이 은은하게 남습니다. 조개 살이 오므라들지 않고 적당한 크기로 익어 있었습니다.



유발면 : 넓은 면과 마라 양념의 조합
유발면은 납작하고 넓은 면 위에 닭고기 채, 오이채, 다진 땅콩, 고수, 마라 소스를 얹어 비벼 먹는 방식입니다. 면 자체는 탄력이 있고 두께감이 느껴집니다. 비비기 전 상태에서는 재료가 구획을 나눠 배치되어 있고, 섞으면 붉은 기름이 면 전체를 코팅합니다. 마라 향은 분명하지만 혀가 마비될 정도의 강도는 아니어서 중간 정도의 자극감으로 마무리됩니다.


음료 : 하이볼과 생맥주
하이볼은 투명한 롱 글라스에 탄산이 위로 올라오는 형태로 제공됩니다. 생맥주는 덕후선생 로고가 각인된 전용 글라스에 담겨 나오며, 붉은 네온 불빛과 맥주 색이 겹쳐 시각적으로 인상적입니다. 바이주 섹션도 있어 중국 현지식 조합을 원한다면 선택지가 있습니다.


오픈 키친 : 보이는 조리 과정
유리 너머로 셰프가 오리를 손질하고, 면을 건조하며, 찜기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장면이 식사 내내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 오픈 키친 구조가 공간의 밀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여러 마리의 오리가 후크에 걸려 있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인상적이고, 중식 전문점임을 직관적으로 전달합니다.



마무리 : 이 자리에 이 공간이 들어서는 것의 의미
역삼 사거리 지하에 이 정도 규모와 완성도의 중식 공간이 들어섰다는 것은, 이 상권이 기대하는 고객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합니다. 음식은 전통 중식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방향이고, 주류 구성은 단순 식사 자리보다 회식이나 저녁 모임에 더 어울립니다. 계산 후 나가는 길에 따샤수탕(대하사탕)을 건네받는 마무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브랜딩과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지만, 음식 자체도 충분히 그 기대를 받쳐주는 편입니다. 이 조합이 본인의 취향에 맞는지는 직접 확인해 볼 만한 자리입니다.

기본 정보
-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134 지하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