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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카야 산 — 부산 광안리, 바다와 산이 만나는 자리의 이자카야

by 이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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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 흰 간판 하나

수영구 민락로 골목에서 SAAN이라는 금색 로고가 새겨진 흰 사각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유리 너머로 길게 늘어선 베이지색 천 패널과 노란 빛이 번지는 내부가 보인다. 문을 열기 전부터 공간의 온도가 짐작된다.

입구 양쪽에 걸린 린넨 소재의 천 장식은 실내 천장까지 이어진다. 손으로 꿰맨 듯 테두리가 굵게 박음질된 그 패널들은 공간 전체를 느슨하게 구획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일본 이자카야 특유의 노렌(暖簾)을 연상시킨다.

카운터 너머로 보이는 것들

자리는 카운터석 중심이다. 손님과 주방 사이에 별다른 경계가 없어, 앉는 순간부터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시야 안으로 들어온다. 초록색 원형 로고가 인쇄된 검은 티셔츠를 입은 스태프가 태블릿으로 주문을 확인하고, 그 뒤로는 조명이 켜진 냉장 진열장에 다양한 사케 병들이 세워져 있다.

가게전경

오픈 키친에서는 기름 끓는 소리와 연기가 카운터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든다. 튀김을 건지는 손, 불 위에서 무언가를 돌보는 손이 번갈아 눈에 띈다.

이자카야 산 야간 입구 — SAAN 간판과 유리 너머 내부
이자카야 산 메뉴판과 스페셜 시트 — 인쇄 메뉴와 손글씨 오늘의 메뉴

자리에 앉으면 먼저 이것부터

흙빛이 도는 작은 도자 접시 위에 젓가락이 흰 봉투에 담겨 놓여 있다. 봉투에도, 그 아래 검은 파우치에도 SAAN 로고가 찍혀 있다. 소품 하나에도 브랜드의 시선이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자카야 산 젓가락 세팅 — SAAN 로고 도자 접시와 젓가락 봉투
고수와 토마토 사이드 — 흰 도자 그릇에 담긴 숙채

오토오시로 나온 풋마늘

왕우럭조개 숙회 옆 전경

메뉴는 인쇄된 정규 메뉴판과 손글씨로 적힌 스페셜 메뉴 두 장으로 구성된다.

정규 메뉴에는 ‘작은 접시의 요리’와 ‘메인 요리’ 섹션이 나뉘어 있고, 히아시 토마토(9,000원), 안키모 브륄레(14,000원), 치킨 난반(16,000원), 라즈 크랩(18,000원), 이소베마키(18,000원), 시즌 연잎생선찜(32,000원), 오리가슴(32,000원), 꼼장어 질불구이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음료 쪽에는 사케, 와인, 소주 외에도 산 그로니(고구마소주, 아티초크 아마로, 베르못), 산 티니(다이야메, 베르못, 리치피클) 같은 시그니처 칵테일 라인업이 갖춰져 있다.

메인 메뉴판 클로즈업 — 시즌 연잎생선찜, 오리가슴, 칵테일 항목

왕우럭조개 들기름 숙회

첫 번째로 나온 것은 왕우럭조개 들기름 숙회다. 큼직한 흰 조개껍데기를 그릇 삼아 얼음 위에 얹어 냈다. 조개살을 잘게 썰어 겨자씨, 쪽파 채, 홍고추 링과 함께 담고 들기름 베이스의 소스를 부어 마무리한 형태다.

왕우럭조개 들기름 숙회

숙회라고 했지만 살짝 익힌 정도라 조개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들기름의 고소함이 조개의 바다 향을 감싸고, 겨자씨가 씹힐 때마다 짧은 매콤함이 함께 온다. 홍고추는 시각적인 역할이 크지만 한 점씩 집을 때마다 살짝 매운 자극을 더한다. 껍데기 안에 고인 소스까지 떠먹으면 한 그릇이 완성된다.

왕우럭조개 들기름 숙회
왕우럭조개 들기름 숙회

오뎅과 함께 잠깐

오뎅은 도자 그릇에 담겨 나왔다. 무가 국물을 충분히 머금어 속까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고, 곱창어묵과 해초 묻힌 어묵도 한 그릇 안에 자리를 잡았다. 옅은 갈색 다시 국물은 짜지 않고 조용하게 감칠맛이 배어난다.

오뎅
오뎅

산 그로니

음료는 산 그로니를 골랐다. 고구마소주를 베이스로 아티초크 아마로와 베르못을 섞고, 오렌지 껍질에 절인 고구마 정과를 가니시로 얹은 칵테일이다. 짧은 나무 꼬치에 꿴 정과가 투명한 잔 위에 걸쳐져 나왔다.

산그로니

색은 깊은 호박빛이고, 쓴맛과 단맛이 층을 이루며 올라온다. 아마로 특유의 약초향이 고구마소주의 구수함과 겹치면서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은 균형을 만든다. 칵테일바 코듀로이펠라즈와 협업한다는 이야기가 이 잔 안에 담겨 있는 듯한 인상이다.

산그로니
산 그로니와 고구마 정과 가니시 — 투명한 잔 위에 걸쳐진 꼬치

사케 두 병

테이블 위에는 블랙잭(極辛口, Extreme Dry)과 치토세쓰루(千歳鶴) 순미주 두 병이 나란히 놓였다. 블랙잭은 금색 라벨에 굵은 붓글씨체가 인상적이고, 치토세쓰루는 홋카이도산 조주 호적미를 사용한 순미 긴죠다. 두 병을 번갈아 마시면서 같은 음식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됐다. 잔술로도 즐길 수 있는 라인업이 많아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다.

블랙잭과 치토세쓰루 사케 두 병 — 카운터 위에 나란히 세워진 모습
사케 두 병 뒷 라벨 — 치토세쓰루 설명 및 성분 표기
블랙잭 극신구 사케 — 금색 라벨에 붓글씨체 클로즈업

롤캬베츠

롤캬베츠는 깊은 그릇에 붉은 토마토 소스와 함께 담겨 나왔다. 둥글게 말린 양배추 안쪽에는 고기 속이 단단히 채워져 있고, 반으로 잘린 단면에는 연한 속살과 얇게 감긴 양배추 층이 보인다. 위에는 잘게 다진 허브와 마늘, 토마토 조각이 흩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따뜻한 스튜 같은 인상이다. 숟가락으로 소스를 함께 떠 올리면 토마토의 산미와 고기 육즙이 섞여 묵직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양배추는 부드럽게 익어 칼 없이도 쉽게 갈라지고, 속은 촉촉하게 잡혀 있어 한 입마다 포근한 단맛이 남는다. 이자카야 메뉴라기보다는 작은 양식 접시처럼 느껴지는 구성이라, 술안주로도 좋지만 중간에 속을 달래주는 요리로 특히 잘 맞았다.

산 그로니 클로즈업 — 호박빛 칵테일

우나마키

밥우나마키는 네 조각이 납작한 돌 접시 위에 담겨 나왔다. 놀랍게도 밥 없이 무와 김으로 깔끔함과 포만감을 잡은 깔끔한 조합, 굉장했다.
잘린 단면에는 노란 계란지단, 초록 채소, 그리고 검게 구운 표면이 층층이 드러난다. 각 조각 위에는 붉은 양념-아마도 메실 이 점처럼 얹혀 있다. 한 입 크기로 집어 들면 밥과 장어, 채소가 함께 묶여 있어 무게감이 있다.

우나마키

주방이 보이는 자리의 감각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토치로 무언가를 그슬리는 장면, 뜨거운 기름에서 꺼낸 튀김이 조리대 위에 쌓이는 장면.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이미 그 과정을 한 번 본 셈이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자카야 산 오픈 키친 — 튀김과 오뎅이 가득 담긴 조리 트레이
이자카야 산 주방 — 토치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픈 키친 장면
이자카야 산 카운터석 — 스태프와 오픈 키친, 사케 진열장이 보이는 내부 전경

산(SAAN)이라는 이름은 바다와 산이 만나는 도시 부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작고 소박한 한 그릇을 정체성으로 삼는다는 설명처럼, 나오는 요리들은 저마다 크기가 과하지 않고 재료 한두 가지에 집중하는 구성이다. 협업 칵테일, 계절 메뉴, 손글씨 스페셜 시트까지, 고정된 것과 변하는 것이 나란히 존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광안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밤이었다. 서울과 비교하거나 놀랄 필요도 없이, 그냥 이 도시에 있는 한 자리로 기억에 남는다.
가장 트렌디하고 열정적인 이자카야는 바로 부산에 있었다.

산을 표현한 장식물

기본 정보

  • 주소: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로6번길 17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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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카야 산 사인보드 클로즈업 — 흰 배경에 금색 원형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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